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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랭보는 죽을 수 없어. 왜냐면 그놈은 악마니까. 2025. 04.27. 18:00 윤승우 안재영 신은호 V씨의 은혜로 뮤지컬 '랭보'를 보게 되었답니다. 티켓. 그리고 9권의 책과 한 잔의 음료와 델리만쥬, 마지막으로 정성스러운 편지까지 받았는데... 이건 다음에 풀고.V씨께서 꼭 써달라고 당부한 '랭보' 후기로 바로 가겠습니다.뮤지컬 '랭보'. 사전에 스포일러를 당하지 않기 위해 모든 정보를 차단하고 들어갔기 때문에, V씨에게 줄거리를 들었습니다.한 줄 요약: 두 남정네의 사랑증오기쁨슬픔환희불만협박애원순애이별 쇼쇼쇼.극을 보면서, 저는 '베를렌느'가 대충 20대 초중반인 줄 알았습니다. 시대 생각해서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되 매너리즘에 빠져 있고, 어린 '랭보'의 시를 보고 단박에 파리로 오라는..

[한 잔의 차보다 더 좋은 것은 잠깐의 낮잠 뿐이랍니다.] 오전의 색채는 새벽을 깨우는 눈부신 파란색에 가깝다. 태양마차가 어둠을 뚫고 박차를 가하면 밤새 내린 비는 나뭇잎에 맺힌 이슬이 되고, 넘실대는 깊은 바다에서 눈을 뜬 빛은 수탉의 부리 위에서 힘찬 울음으로 다시 태어난다. 세상의 가장 높은 곳에서 소리는 시작되어 사자와 영양을 깨운다. 모든 꽃의 봉오리를 한번에 틔워내고, 단잠에 빠져 있던 이들의 창문을 단박에 열어 젖히며 차가운 공기를 불어 넣는다. 작열하는 젊음의 박동, 숨김 없는 어린이의 웃음소리야말로 오전의 세상을 표현하기에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그렇다면 오후는? 이토록 거칠 것 없이 뻗어나가는 빛깔의 뒤를 슬그머니 따라오는 시간은 어떨까. 한낮의 태양이 기운찬 젊은이라면 느지막한 햇살..

양이 복사가 된다고? 그렇습니다. 늘어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말이죠. "도대체 양이 복사가 된다는 게 무슨 말이야?""낸들 아나."백색으로 가득 찬 방.그 안에서 유일한 색채를 띈 검은 문.아마란토스는 문 손잡이를 가볍게 두드렸다.그것은 둥글었고, 고풍스러운 고딕풍으로 유려하게 장식된 모양이 눈에 띄었다.기하학적으로 구부러진 고사리와 원, 레이스를 정교하게 흉내낸 황동 사슬들.이 빌어먹을 상황만 아니었다면 학자로서 면밀히 살펴 보고 싶은 욕구를 불러 일으켰을 테다. '그래. 이 뭣같은 상황만 아니었다면.'아마란토스는 고개를 돌렸다.한없이 깨끗하고 정갈한 방이었다.동시에 어딘가 불쾌한 분위기를 풍겼다.그것은 분명 눈에 닿는 곳이 온통 하얄 뿐이기 때문이었다.손자국 하나, 먼지 하나 없이 하얀 벽은 꺾이는 ..
색이 다른 셀로판지 두 장손바닥과 손바닥을발바닥과 발바닥을남김없이 꼭꼭 겹쳐 보자지나가던 햇님이 그림자를 드리워 주었다어디서도 본 적 없는 빛반짝반짝.
세상에 존재하는 많고 많은 장미꽃 중에 내 장미꽃만 모서리가 헤지고 낡았다.가장 부드러운 꽃잎도 떨어져 나간 꽃잎도 가장 발간 꽃잎도 가장 풀죽은 꽃잎도새로이 돋아나는 여린 잎도 솜털이 보송한 이파리도 억센 가시도 한 손에 죄 들어오는 봉오리도 뒷축을 구겨 신은 운동화처럼나는 그 모양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유혈주의] 어두운 뒷골목, 주홍빛 백열등이 점멸했다. 깜박. 깜박. 병든 노인이 기침하듯 스파크를 토해내던 백열등은 이내 빛을 잃고 잦아들었다. “에이, 씨. 또 고장났잖아. 이게 몇 번째야?” 험상궂은 인상의 남성이 투덜거렸다. 그의 옆에서 다른 남성이 낄낄거렸다. “말단 따까리들이 까라면 까야지. 여기에 쓸 돈이 없다는데 어떡하냐?” “빌어먹을 인생. 내가 이 밑바닥 꼭 뜨고 만다.” 남성들이 서로 농담을 던질 무렵, 조그만 그림자가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들어가게 해줘.” 아이가 남성을 올려다 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어라, 이것 봐라. 어디서 굴러먹다 온 꼬마래?” 남성들은 대화를 멈추고 아이를 바라봤다. 한 남성이 아이의 뺨을 우악스럽게 쥐고 고개를 들어올렸다. 흐릿한 불빛 아래서 또렷한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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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깔끔하게 인정하겠다. 저놈의 체력을 얕봤다. 아마란토스는 카페 의자에 들러붙다시피 기댔다. 그의 체력을 쪽쪽 빨아먹은 애인이란 녀석은 카운터에서 음료 두 잔을 가져오는 참이었다. 해임은 얼음이 가득 담긴 쪽을 아마란토스에게 건네주며 장난스레 웃어 보였다. “벌써 지치면 어떡해. 놀아준다며.” “혹시 전생에 보더콜리였어?” 아마란토스는 잔을 받아들었다. 말을 길게 할 여력조차 없었다. 아마란토스는 해임을 한 번 흘겨 보고는 커피를 쭉 들이켰다. 탁, 소리와 함께 떨어진 잔에는 얼음만 남아 있었다. “용들은 다들 그렇게 체력이 좋은가.” 아마란토스는 한숨처럼 말을 내뱉었다. 해임의 눈매가 금세 가늘어졌다. “나 말고 다른 용 만나?” 바늘처럼 박히는 시선에 아마란토스가 고개를 들었다. “그럴 리가.”..
20240713~20240720(1)어제 방학이 시작되었다. 자정이 지났으니 '어제'로 표현함이 옳다. 학교에 남아 보충 수업을 받을 것.> 정규 교육 과정의 틀을 벗어나는 일이 드문 우수 고등학교에서는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학생들의 우수한 성취를 원하는 후원자들의 압박이 들어왔거나 위원회에서 결정한 사안이 분명했다. 각 가정에도 몇 주 전에 진즉 통보되었을 것이다. 교사는 권고문을 좋아하지 않는 눈치였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어쨌든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학생이 학교에 남길 선택함은 합당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졌다. 야심한 시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바깥의 공기는 아직 무더웠다. 어깨를 덮은 재킷과 그 아래 셔츠가 축축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보통 이맘때에는 땀을 흘리지 않았음을 회상하자면 이상하리..

(인간x인어 au) 이해할 수 없대도 의심하지 마. 새벽까지 쏟아지던 장맛비가 가시고 말간 태양이 떠올랐다. 울긋불긋한 여름 꽃들은 일제히 고개를 들었고, 갓 개인 하늘 위로 물방울이 툭, 떨어지면 파란 그림자가 일렁였다. 모든 것들이 허물을 벗은 듯이 선명하게 반짝였다. 여기, 웅덩이에 고개를 처박을 기세로 머리를 기울인 한 아이를 제외하고서 말이다. 기다란 은빛 머리카락이 웅덩이 위로 비치자 새하얀 그림자가 구름처럼 흘러갔다. 눈을 한 번 깜박이면 새파란 바다를 닮은 빛이 슬쩍 나타났다가 금세 자취를 감추었다. 아이는 흐릿한 모양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젖혔다. 그날은 무척이나 습했다. 둥근 이마에 샛노란 태양이 쉴새없이 빛을 쏘아댔다. 정오의 가혹한 열기는 아이에게는 가혹한 처사였고, 조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