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치킨수프/개인작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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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이 다른 셀로판지 두 장손바닥과 손바닥을발바닥과 발바닥을남김없이 꼭꼭 겹쳐 보자지나가던 햇님이 그림자를 드리워 주었다어디서도 본 적 없는 빛반짝반짝.
세상에 존재하는 많고 많은 장미꽃 중에 내 장미꽃만 모서리가 헤지고 낡았다.가장 부드러운 꽃잎도 떨어져 나간 꽃잎도 가장 발간 꽃잎도 가장 풀죽은 꽃잎도새로이 돋아나는 여린 잎도 솜털이 보송한 이파리도 억센 가시도 한 손에 죄 들어오는 봉오리도 뒷축을 구겨 신은 운동화처럼나는 그 모양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당신이 매미의 껍데기를 본 적 있는지 모르겠다. 매미는 꼬박 몇 년을 땅 속에 묻혀 있는데, 그것은 오로지 여름철 한낮 노래하기 위해서란다. 수분을 머금은 공기가 대지를 달구기 시작할 때 매미는 날아오른다. 맴-- 맴-- 찌르르르-- 맴-- 맴-- 찌르르르-- 하나가 죽어도 다른 하나가 맴-- 맴-- 찌르르르-- 목청 높여 우는 일 빼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진실로 매미의 축복이다. 나는 잠깐 구름이 드리운 새에 고개 들어 연등에 적힌 이름을 하나 하나 가슴에 헨다. 김00. 박00. 정00. 얼굴 모르고 사는 곳 모르는 당신들이 연등을 다는 표정을 상상한다. 무슨 이유로 이름 석 자 바람결에 맡기었는가? 그것은 허황되었다. 미신일 뿐이다. 당신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등..
눅진한 여름밤에는 돌연 바다를 찾고 싶어진다. 밤바다는 온통 시커멓고 사방 적적한 가운데 파도만 친다. 철썩, 처얼썩대며 저들끼리 몸을 부대낀다. 끊임 없이 얼키고 설키는 파도라 별빛 한 점 끼어들 데가 없다. 암흑. 그 불길한 검정색을 보고 있자니 괜히 등골이 오싹해진다. 또한 냅다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인다. 바람이 귓가에다 대고 부드럽게 속살이면, 누군가 등을 살짝이라도 떠민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러한 심정은 자살충동이라고 이름 붙일 수 없다. 까마득한 절벽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감상과 비슷할 뿐이다. 그렇다. 그것은 절벽이다. 수많은 선이 범람하는 가운데 붙잡힐 수 있는 것이라고는 무엇 하나 존재치 않는다. 그리하여 비로소 홀로될 수 있다. 나는 경계에 선 채, 하이얀 포말을 발가락 사이사이 ..
사랑을 몰라도 사는 데에는 문제가 되지 않나요?그렇다면 어쩐 이유로 사 - ㄹ - ㅁ - 은 사람과 사랑을 닮은 이름을 하나요?사 - ㄹ - 암을 사라 - ㅇ - 하지 않는 사 - ㄹ - ㅁ 은 의미 없나요?사 - ㄹ - ㅁ 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나요?사 - ㄹ - 암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나요?
임이여 생에 다시 없을 고운 임이여 나와 함께 훌쩍 떠나버립시다 차라리 죽어버립시다 우리는 이 땅에 발 딛기에 너무나 가벼운 존재들입니다 햇볕이 두려워 등불로 달려드는 나방들아 불나방들아 보소, 나란 치는 녹아버린 심장의 무덤 위에서야 시인이라 불리울 수 있습니까?
어느 날 당신이 말했다 '내가 죽는다면 무덤에 꽃이 피었으면 좋겠어' 무심히 내던진 말에 차라리 안심했지 그날은 온산에 단풍빛 울긋불긋한 가을이었으니까 차가운 두 손을 붙잡고 뺨에 부벼본다 돌아갈 길은 아스라이 먼데 흰눈이 푹푹 나려 뎅그랑 뎅그랑 종소리는 교회의 장송곡인가 당나귀의 울음인가 꽃이 피기엔 아직 날이 춥더라 소년은 꽃이 되었다 봉긋한 요람에 담긴 아기천사의 하이얀 그림자 나빌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