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모임

밤바다 본문

치킨수프/개인작

밤바다

@녹틸루카 2024. 7. 16. 11:40

눅진한 여름밤에는 돌연 바다를 찾고 싶어진다. 밤바다는 온통 시커멓고 사방 적적한 가운데 파도만 친다. 철썩, 처얼썩대며 저들끼리 몸을 부대낀다. 끊임 없이 얼키고 설키는 파도라 별빛 한 점 끼어들 데가 없다. 암흑. 그 불길한 검정색을 보고 있자니 괜히 등골이 오싹해진다. 또한 냅다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인다. 바람이 귓가에다 대고 부드럽게 속살이면, 누군가 등을 살짝이라도 떠민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러한 심정은 자살충동이라고 이름 붙일 수 없다. 까마득한 절벽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감상과 비슷할 뿐이다. 그렇다. 그것은 절벽이다. 수많은 선이 범람하는 가운데 붙잡힐 수 있는 것이라고는 무엇 하나 존재치 않는다. 그리하여 비로소 홀로될 수 있다. 나는 경계에 선 채, 하이얀 포말을 발가락 사이사이 묻히며 그대로 풍덩 빠져버린들 죽지 않을 것 같다는 기묘한 환상에 사로잡혔다. 파랑은 육과 해를 나누는 경계이다. 이왕 익사한다면 땅보다 바다에서 하고 싶다. 마침 휘영청 달이 떠올랐다. 빛은 어둡다. 넘실대는 하늘과 바다가 하나 된 채 위아래로 펼쳐진다. 이제 육은 조그마한 모래 알갱이가 되어 파도 속으로 사라진다. 낭창하게 허리 휜 달이 남몰래 속눈썹을 떨면 사람은 아스라이 차가운 지평선 아래로 결별.

'치킨수프 > 개인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의 증거.  (0) 2024.11.07
불상 앞에서  (0) 2024.08.01
무제  (0) 2024.06.06
이런시  (0) 2024.03.17
꽃이 피기엔 아직 날이 추운 탓에 직접 꽃이 되기로 했다.  (0) 2024.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