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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x인어 au) 이해할 수 없대도 의심하지 마. 새벽까지 쏟아지던 장맛비가 가시고 말간 태양이 떠올랐다. 울긋불긋한 여름 꽃들은 일제히 고개를 들었고, 갓 개인 하늘 위로 물방울이 툭, 떨어지면 파란 그림자가 일렁였다. 모든 것들이 허물을 벗은 듯이 선명하게 반짝였다. 여기, 웅덩이에 고개를 처박을 기세로 머리를 기울인 한 아이를 제외하고서 말이다. 기다란 은빛 머리카락이 웅덩이 위로 비치자 새하얀 그림자가 구름처럼 흘러갔다. 눈을 한 번 깜박이면 새파란 바다를 닮은 빛이 슬쩍 나타났다가 금세 자취를 감추었다. 아이는 흐릿한 모양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젖혔다. 그날은 무척이나 습했다. 둥근 이마에 샛노란 태양이 쉴새없이 빛을 쏘아댔다. 정오의 가혹한 열기는 아이에게는 가혹한 처사였고, 조그만..
당신이 매미의 껍데기를 본 적 있는지 모르겠다. 매미는 꼬박 몇 년을 땅 속에 묻혀 있는데, 그것은 오로지 여름철 한낮 노래하기 위해서란다. 수분을 머금은 공기가 대지를 달구기 시작할 때 매미는 날아오른다. 맴-- 맴-- 찌르르르-- 맴-- 맴-- 찌르르르-- 하나가 죽어도 다른 하나가 맴-- 맴-- 찌르르르-- 목청 높여 우는 일 빼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진실로 매미의 축복이다. 나는 잠깐 구름이 드리운 새에 고개 들어 연등에 적힌 이름을 하나 하나 가슴에 헨다. 김00. 박00. 정00. 얼굴 모르고 사는 곳 모르는 당신들이 연등을 다는 표정을 상상한다. 무슨 이유로 이름 석 자 바람결에 맡기었는가? 그것은 허황되었다. 미신일 뿐이다. 당신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등..
눅진한 여름밤에는 돌연 바다를 찾고 싶어진다. 밤바다는 온통 시커멓고 사방 적적한 가운데 파도만 친다. 철썩, 처얼썩대며 저들끼리 몸을 부대낀다. 끊임 없이 얼키고 설키는 파도라 별빛 한 점 끼어들 데가 없다. 암흑. 그 불길한 검정색을 보고 있자니 괜히 등골이 오싹해진다. 또한 냅다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인다. 바람이 귓가에다 대고 부드럽게 속살이면, 누군가 등을 살짝이라도 떠민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러한 심정은 자살충동이라고 이름 붙일 수 없다. 까마득한 절벽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감상과 비슷할 뿐이다. 그렇다. 그것은 절벽이다. 수많은 선이 범람하는 가운데 붙잡힐 수 있는 것이라고는 무엇 하나 존재치 않는다. 그리하여 비로소 홀로될 수 있다. 나는 경계에 선 채, 하이얀 포말을 발가락 사이사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