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모임

아쿠아리움 본문

샐러드바/란해임

아쿠아리움

@녹틸루카 2024. 7. 2. 03:08

"수족관 갈래?"

"갑자기? 예약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한데..."

"응? 식당도 아니고, 뭔 수족관을 예약을 한대."

... ...

"대관하지 마."

"힝."


 
"그나저나 무슨 바람이 들은 거야, 란? 평소에는 방에 콕 틀어 박혀 있던 학자님께서 먼저 나오자고 할 줄은 몰랐는걸."

"이 새끼가 잘하다가 한 번씩 속을 긁는다."

아마란토스는 가차 없이 상대의 등짝을 후려갈겼다. 짝! 경쾌한 소리와 함께 해임이 등을 부여잡으며 낑낑거렸다. 해임의 눈가에 작게 물방울이 맺혔다.

"내가 틀린 말 했나! 평소에는 죽어도 나오지 않았잖아."

어지간히도 억울한지 해임은 입술을 삐죽이기까지 했다. 아마란토스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해임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주둥아리를 잡아 묶어 버리기 전에 집어 넣어."

애인의 열렬한 시선 끝에 해임의 입술이 다시 오무라들었다. 그제서야 아마란토스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네 말대로 내가 밖에 나가지 않은 지 제법 되긴 했지." 

해임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럼 왜 때린 거야...?'

아마란토스는 해임의 시선을 깔끔하게 무시했다.

"마침 여름이니 수족관 데이트가 좋을 것 같더라. 물만 가득한 곳이라 네 취향에 맞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실내니까 내가 도중에 쓰러지는 일이 없는 편이 낫겠지."

동기 녀석들에게 애인과 데이트 할 만한 장소를 넌지시 물었더니 득달같이 달려들었다고는 절대 말 못 한다. 아주 여름의 데이트 장소를 주제로 논문까지 쓸 기세였다고, 말이다. 아마란토스는 한 손을 휘휘 내저어 상념을 털어냈다. 마침 해임이 눈을 반짝였다. 

"데이트 하고 싶었어?"

해임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아마란토스가 불길한 운명을 느낄 즈음이었다.

"진작 말하지 그랬어! 이 수족관 말이야, 전 의뢰인이 운영하는 곳이라 내가 아주 잘 알거든. 아주 끝내주는 하루를 장담하지!"

해임이 싱글벙글 웃으면서 아마란토스의 손을 잡고 빠르게 걸어갔다. 아마란토스는 해임의 손에 팔랑팔랑 이끌려 가며 이마를 짚었다. 이미 알던 곳일 줄은 몰랐다. 분명 최근에서야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고 들었는데, 하여간 인맥이 어찌나 넓은지 모를 일이다.

"해임, 천천히..."

아마란토스가 입을 열려던 참이었다. 그의 시선이 앞서 가는 해임의 뒷통수에 닿았다. 해임의 곱슬머리가 바람에 흩날리며 불어오는 파도처럼 희게 빛났다.  그 틈으로 살짝 보이는 긴 귀는 미미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아마란토스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역시 데이트 한다고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산책' 소리 들은 강아지도 아니고, 벌써부터 기가 좍 빨리는 기분이지 않은가. 하지만 누구든지 애인에게 너무 들떴으니 침착하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누구도.

'이 녀석도 평소에 나를 존중했으니까. 이번만큼은 뜻대로 따라 줘야지.'

아마란토스는 옅게 미소지었다.

수족관의 초입은 열대어 관으로, 적도의 바다를 그대로 옮겨 온 듯 화사하게 꾸며져 있었다. 아마란토스는 에메랄드 빛으로 일렁이는 천장을 보며 작게 감탄했다.

"관광 장소로 인기가 많은 곳이라더니, 유명한 값을 하네."

"그치? 언젠가 너랑 함께 오고 싶었어. 설마 네가 먼저 초대해 줄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어느샌가 팔짱을 슬쩍 낀 해임이 가슴을 쭉 폈다. 마치 자신이 초대한 양 위풍당당한 모습이었다. 아마란토스는 피식 웃음을 비칠 수밖에 없었다. 

"선수 쳐서 다행이네."

"아직 함께 갈 곳이 오천 군데는 더 있으니까 걱정 마."

해임이 지나가듯이 말을 툭 던졌다.

아마란토스는 질색하는 눈으로 해임을 쳐다봤다.

"농담이지?"

"진짜야."

해임이 생긋 웃었다.

"원한다면 언제든지 갈 수 있도록 세계일주 계획까지 짜놓았어. 네가 좋아할 만한 곳으로."

아마란토스는 그만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사무 외에는 실없고 장난기 많은 애인이지만, 이럴 때만은 농담인지 진담인지 영 구분이 가질 않았다. 당장 몇 달 전만 하여도, 이벤트랍시고 호텔 식당 전체를 대관해버린 적이 있지 않았던가. 농담인 줄 알고 웃어 넘겼다가 그의 자금력에 놀란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꼭 이상한 부분에서 철저한 면모가 있어...'

차라리 사고 치기 전에 말리는 편이 낫지. 아마란토스가 해임의 팔을 단단히 붙잡았다. 그 행동을 어떻게 해석한 걸까, 해임의 미소가 더욱 커졌다. 

"이리 와, 란! 이쪽에 네가 흥미로워 할 만한 물고기가 있을 거야."

시원한 물빛 그늘 사이로 각양각색의 물고기들이 스쳐 지나갔다. 돛대 모양을 한 노란색의 물고기, 날렵한 유선형의 파란색 물고기, 무리 지어 다니는 은빛 물고기까지. 어딜 보더라도 화려한 생태가 펼쳐졌다.

아마란토스는 다시금 해임이 스스로 칭찬받은 양 우쭐해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꼭 보석함 같네."

"그거, 꼭 내가 쓸 법한 비유다."

사랑하면 닮는다더니. 해임이 장난스럽게 웃어 보였다. 

"응. 그런가 보지."

아마란토스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되려 반응을 보인 쪽은 해임이었다.

"예전에는 얼굴 빨개지고 아주 난리도 아니더니?"

"생각해 봐. 우리가 동거를 한 시간이 벌써 몇 년이야?"

"글쎄... 최소 이백 년은 되었나."

"그리고 우리가 사귄 지는?"

"6879일."

"일수까지 외우고 있었어?"

"응!"

... ...

아마란토스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그만큼 같이 살면서 농담 하나하나에 다 부끄러워하다간 정신이 남아나지 않을걸."

해임은 키득키득 웃으며 아마란토스의 어깨에 고개를 기댔다.

어휴, 낮다. 예전에는 한참 컸는데. 분명 아마란토스에게 그대로 말한다면 한 대 맞을 이야기였다. 

"그러네."

"그치? 알면 재미 없는 농담은 그만 둬. 밖이잖아."

아마란토스가 해임의 뺨에 대고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싫어. 반응이 이렇게 재밌는데."

"어휴..."

"이번에는 저쪽으로 가보자! 차가운 바다에 사는 물고기도 재밌을 거야."

해임이 다시 아마란토스를 이끌었다. 아마란토스 또한 별말 없이 해임을 따라갔다.

"이것 봐, 란! 신기하게 생겼지!"

"꼭 함장모를 쓴 것 같이 생겼네."

"저기도. 저쪽도 가보자!"

"벌써? 잠시만..."

"얼른!"

 

세 시간 후.

뭐. 실내라서 안 쓰러진다고? 퍽이나 그러겠다.

'샐러드바 > 란해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쿠아리움 2  (0) 2024.08.29
포말  (0) 2024.08.13
아이비  (1) 2024.06.08
디코 인어썰  (0) 2024.03.12
파란  (0) 2024.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