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de. 01 토끼굴
[유혈주의]
어두운 뒷골목, 주홍빛 백열등이 점멸했다. 깜박. 깜박. 병든 노인이 기침하듯 스파크를 토해내던 백열등은 이내 빛을 잃고 잦아들었다.
“에이, 씨. 또 고장났잖아. 이게 몇 번째야?”
험상궂은 인상의 남성이 투덜거렸다. 그의 옆에서 다른 남성이 낄낄거렸다.
“말단 따까리들이 까라면 까야지. 여기에 쓸 돈이 없다는데 어떡하냐?”
“빌어먹을 인생. 내가 이 밑바닥 꼭 뜨고 만다.”
남성들이 서로 농담을 던질 무렵, 조그만 그림자가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들어가게 해줘.”
아이가 남성을 올려다 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어라, 이것 봐라. 어디서 굴러먹다 온 꼬마래?”
남성들은 대화를 멈추고 아이를 바라봤다. 한 남성이 아이의 뺨을 우악스럽게 쥐고 고개를 들어올렸다. 흐릿한 불빛 아래서 또렷한 선홍색 양갈래가 반짝였다. 남성은 아이의 얼굴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비죽였다.
“얼굴은 제법 반반한데? 이렇게 어린 애까지 창부로 써먹던가? 야! 얘 누가 불렀어?”
아이가 웅얼거렸다.
“들어가게 해줘.”
“뭐? 꼬맹아. 여기가 보육원인 줄 알아?”
남성이 으르렁거렸다. 아이는 말간 얼굴로 남성을 올려다 보았다. 투명한 보랏빛 눈동자가 남성의 눈에 비쳤다.
“한 번 더 말하면 세 번.”
아이는 또박또박 말했다.
“들어가게 해줘.”
“귀가 먹었나, 미쳤나.”
남성이 아이의 얼굴을 거세게 밀쳤다. 한순간 무게 중심을 잃은 아이는 제자리서 비틀대다 그대로 자빠졌다. 별 것도 아닌 것이 같잖게. 남성은 중얼거리며 뒤를 돌았다.
“귀찮게 굴지 말고 가라, 꼬마야.
“세 번. 지금 토끼굴. 뛰어듭니다.”
- 뭐, 벌써? 어휴… 즐겁게 놀다오렴.
아이의 귓가에서 누군가 속삭였다. 아이는 몸을 비척비척 일으켰다.
“이야, 이것 봐라? 쳐맞고도 멀쩡하게 일어나네? 깡은 있구나?”
남성이 비죽이며 아이에게 다가갔다. 그는 쭈그려 앉아 아이의 머리통을 툭툭 두드렸다.
“애기야. 당장 꺼지는 편이…”
콱.
으드득.
남성의 몸뚱이가 서서히 허물어졌다. 털썩. 순식간에 두 눈을 뽑힌 남성 너머로 아이가 폴짝 뛰어 넘었다. 아이의 표정은 조금 전과 다를 바 없이 순진한 얼굴이었고, 꼭 쥔 손은 빨간 피로 흠뻑 물들어 있었다. 믿기 어려운 광경을 목도한 남성의 눈이 경악에 찼다.
“제임스! 제기랄, 이 녀석 정체가 뭐야?”
그것이 남성의 마지막 문장이었다. 아이는 손에 들린 눈알을 툭 내버리고, 남성에게 달려들었다. 남성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는 아이의 두 팔을 떨쳐내기 위해 자신의 목을 쥐어뜯으며 발버둥쳤지만, 아이의 손아귀는 이상할 정도로 단단했다.
“꺼져! 꺼져 버리라고!”
남성은 거의 울며 소리질렀다. 그러나 소란은 오래가지는 못했다.
빠각. 아이가 손에 힘을 주자 남성의 목이 기이한 각도로 틀어졌다. 눈 깜짝할 새에 둘을 처리한 아이는 옷소매로 손바닥을 박박 닦았다. 그러나 손과 함께 얼룩진 지 오래였던 소매는 피를 닦아 주기는커녕 더 번지게 만들었다. 아이는 얼룩덜룩해진 두 손을 내려다 보며 오만상을 썼다.
“으, 피. 더러워.”
아이는 두 손을 비비며 핏자국을 지우려 애를 썼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아이는 쓰러진 남성 옆에 쪼그려 앉아 그의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담배. 껌. 이건 뭐지, 고무 풍선? 여기 어디에 열쇠가 있다고 했어. 어딨지. 아이가 남성의 주머니를 헤집다 못해 뒤집으려 시도할 무렵, 내부에서 남성 몇 명이 몰려나왔다.
“비명소리가 들렸는데.”
“침입자인가?”
“이 꼬맹이가? 농담이지?”
아이는 손을 탁탁 털며 일어섰다. 입술을 쭉 내뺀 얼굴은 성가신 기색이 역력했다.
“귀찮은 일. 늘어나.”
- 바니. 업보란다.
“닥쳐.”
- 너무해라….
아이는 한껏 미간을 구기며 시체를 들어 조직원들을 향해 던졌다. 당황한 남성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대열이 무너졌다. 그와 동시에 아이는 시체의 뒤로 파고들었다. 작은 손에 붙잡힌 물체는 가장 앞에 서 있던 남성의 머리였다. 붙잡힌 남성이 비명을 지르기 위해 입을 벌리는 것이 느껴졌다. 손 아래서 핏줄이 거세게 뛰었다. 아이는 남성의 목을 억세게 움켜쥐고, 시체와 똑같이 돌렸다. 빠득.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렸다.
“미친!”
조직원들이 하나 둘 권총과 단검을 꺼내들었다. 그 중 한 명이 아이를 향해 칼날을 휘둘렀다. 아이는 몸을 바짝 숙여 칼을 피했다. 양갈래가 부드럽게 휘어지며 틈을 빠져나갔다. 뒤에서 다른 남성이 주먹을 날렸다.
“머리채를 잡아!”
“구석으로 몰아!”
“쥐새끼처럼 빠르잖아!”
아이는 유연하게 몸을 틀어 공격을 흘렸다. 동시에 공중으로 뛰어 올라 몸을 한 바퀴 굴렸다. 탕! 아이가 있던 자리로 총알이 박혔다. 화려한 춤사위도, 일정한 권법도 없다. 간결한 움직임. 짐승 같은 반응 속도. 힘. 아이의 방식은 오로지 생존에 최적화되었고, 마치 들개처럼 행동했다. 아이는 남성의 등을 지르밟으며 착지했다. 컥! 남성은 고꾸라지며 단검을 떨어트렸다. 남성에게서 빼앗은 단검을 뒷목에 박아넣었다. 끄르륵. 피가래가 끓는 소리와 함께 남성이 무너졌다. 아이는 쓰러지는 남성을 도움닫기 삼아 다른 이의 목을 걷어찼다. 빠각! 조직원의 턱뼈가 박살나며 코에서 피가 흘렀다. 그는 비틀대다 주저 앉았다. 남은 이들의 표정이 희게 질렸다.
“괴물, 괴물이야!”
“윗선에 알려!”
패배. 죽음. 본능적으로 직감한 이들이 뒷걸음질쳤다. 아이는 시체에 꽂힌 단검을 쿡 빼들고, 그들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으, 으아아아!”
조직원들은 미친 듯이 문에 카드키를 두드렸다.
“당장 문 열어, 문 열라고! 살려줘!”
- 인식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시도해 주세요.
- 인식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시도해 주세요.
- 인식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시도해 주세요.
… ….
- 승인되었습니다.
기계적인 음성과 함께 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리고 서 있는 인물은 아이 뿐이었다. 아이의 머리카락에서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이는 고개를 숙여 소매로 눈가를 훔쳤다.
“피 쏟아져. 눈 따가워. 아파.”
까르륵. 아이의 귓가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 바니, 표적이 도망가면 어쩌려고 그래.
“안 도망가. 나, 작은 여자애니까.”
- 이건 또 무슨 자신감인지….
“보스. 쉿.”
아이는 귓가를 쿡 눌렀다. 통신은 뚝 끊겼고, 핏물이 떨어지는 소리 외 들리는 것은 없었다. 아이는 망설임 없이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철퍽. 철퍽. 물러터진 내장 사이로 작고 빨간 발자국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