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
인간이 저 금지된 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써 이 세상에 죽음이 들어와
우리는 에덴을 잃고 온갖 재앙 속에서 살아가야 했으니, 하늘의 뮤즈여. 인간의 저 최초의 불순종에 대해 노래하라.
- 존 밀턴, '실낙원'
스스로를 삼키는 뱀을 끊어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머리와 꼬리를 아는 것.
입구와 출구만 안다면 할 수 있어. 그것은 아주 쉬운 일.
낙원을 그리워하나? 무엇을 그리워하나? 가본 적도 없는, 주어진 적도 없는 곳을 어떻게 그리워하나?
악마의 연회장. 유리창으로 붉은 달빛이 스며드는데
나지막히 속살이는 목소리는 선일까, 악일까.
태어나면서부터 악으로 규정된 족속들이
이제 와서 선악을 논하나?
우리가 이런 고민을 하는 이유는 동족의 스러짐.
그 능력 있는 승리자가 증명했다는 것을 그대도 알 테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누가 죽음을 알았을까.
하지만 그 힘 때문에, 혹은 그의 분노로 다른 고문이 가해질 것을 두려워하여 구원을 바라거나 마음을 바꿀 내가 아니다.
그대는 전생을 기억하는가? 신은 그대의 전생을 기억할까?
나는 신에게 빚진 것이 없다. 이곳에 떨어지기 전 불구덩이에 태워버리고 왔다.
그러고도 남은 딱 하나는 방금 그에게 던져주었다.
신의 것은 신에게로.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로.
세상의 모든 이치가 그렇듯이.
우리의 육체, 우리의 영혼, 우리의 권능.
이것은 전부 우리가 만들어낸 것. 신보다 위대한 악마의 것.
보라! 우리는 페르세포네의 배를 찢어 발기고 탄생한 원죄의 상징이다.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한들 아직 모든 것에서 지지는 않았지.
살고자 하는 본능에서 얻어낸 고통. 불타는 복수심. 불멸의 증오심.
이런 것들에서 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잊지 말아. 어둠 없는 빛은 없어도, 빛 없는 어둠은 존재한다.
우리의 발 밑에. 우리의 배 안에.